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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기존에 경제에 대해서 최소한의 개입을 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이른바 자유방임주의라 부르는 것이였는데, 20세기 초 미국은 경제 대공황을 겪게 되며 경제가 급속히 추락을 하게 되었다. 이 때 대통령 후보였던 루즈벨트 대통령은 포커게임에서 나오는 용어인 뉴딜을 슬로건으로 걸고 동시에 기존의 경제 체재이던 자유방임주의를 지양하는 논리를 펼치었다.
뉴딜이란 카드를 바꿔 다시 치는 것을 의미하는데 자유방임주의라는 카드를 넣고 경제에 적극적으로 침투하고 개입해서 대공황을 극복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다. 그 당시 뉴딜정책이 현재의 미국의 경제방식인 수정자본주의라고 볼 수가 있다. 대공황 당시 뉴욕의 주식은 고꾸라지기 시작하면서 물가도 폭락하고 실업자가 1천만명을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루즈벨트는 대통령이 된 뒤 여러 정책을 펼쳤는데 그 중 하나가 산업부흥법을 제정한 것인데 이 산업부흥법은 최저임금과 노동시간을 다시 재정립해서 고용안전을 꾀하였고 동시에 안정된 임금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다. 자유방임주의에서 보편화 되었던 산업간의 경쟁을 축소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상승 시키는 효과도 내기도 하였다. 테네시강 지역개발에도 박차를 가하였는데 이 대규모의 사업으로 인하여 많은 실업자들이 도로와 다리 그리고 철도 등을 건설하는데 고용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농작물의 생산이 과도하게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도록 하는 농업조정법을 만들게 되어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는 것을 방지함과 동시에 농산물 수급 균형을 이루는 정책을 내었다. 미국정부는 농업법의 일환으로 과잉생산된 농작물들을 가격조정을 위해 매입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금의 일정가치를 기준으로서 달러의 가치를 정하는 제도인 '금본위제'제도를 폐지함으로서 정부가 통화에 대한 일정의 규제력을 가져가게 되었다.
이뿐아니라 대공황속에 파산에 이르는 은행들을 구제해주기 위해 긴급은행법을 만듬으로서 은행이 공황속에서도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게 도와주었다. 이러한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은 돈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시행된 정책이 아닌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부유하게 도와주는 정책이라고 평가받았고 루스벨트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다 라고 밝힌바 있다.
그 당시 뉴딜정책은 경제 대공황으로 불황에 빠져있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며 결국 이러한 실험주의적이였던 정책들은 성공적으로 진행이 되었다. 이러한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은 사실상 추후에 미국전역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 경제대국으로 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기에 역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사례가 되었다.
결국 루즈벨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1933년부터 1937년까지 GDP 는 매년 약 5%정도 성장하였다. 뉴딜정책은 성공적이였지만 뉴딜정책이 희미해짐과 동시에, 미국경제가 더욱 활성화 될 수 있었던 역사적 사실은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미국은 무기와 식량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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